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 (문단 편집) == 진행 상황 == [[파일:external/rack.1.mshcdn.com/Hong-Kong-3.jpg|align=center&width=500]] 주요 시위 지역. 처음에는 애드미럴티(金鐘·Admiralty) 등 도심에서 시작하였으나 코즈웨이 베이(銅鑼灣·Causeway Bay)와 완차이 구(灣仔區·Wan Chai District)를 거쳐 카우룽 반도의 몽콕(旺角·Mong Kok)까지 시위가 번지고 있다. * 8월 31일: [[http://www.ytn.co.kr/_ln/0104_201408311816321868|중국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회가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사실상 거부했다.]] * 9월 22일: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4&oid=001&aid=0007135985|홍콩의 24개 주요 대학들이 홍콩 중문대학교에서 1주일의 동맹 휴학을 선언하였다.]][* 홍콩 중문대학교는 휴학 기간은 짧았지만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하는 걸 고려해 일부러 수업 지도를 상당히 늦추는 등 교수들도 협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. 하긴 센트럴 점령의 공동대표 가운데 한 명이 이 학교 사람이니.] 센트럴 점령과 홍콩 학련 등이 이 집회에 참여했으며, 이후 산발적인 집회를 통해 주민들의 참여를 호소했다. 하지만 상당수의 주민들은 센트럴 점령의 활동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하는 등 소극적인 분위기였다. * 9월 26~27일: 밤부터 아침까지 학생 시위가 벌어져 50명이 체포됐다. 시위대는 26일 밤 홍콩 정부청사 앞 광장에서 시위를 벌이다 청사로 진입을 시도해 경찰과 충돌했다.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4&oid=001&aid=0007148158|그리고 '''조슈아 웡'''이라는 이름이 등장했다.]] 조슈아 웡은 이날 밤 체포되었는데, 체포되기 직전 "10년 후 [[4.19 혁명|초등학생들이 홍콩의]] [[5.18 민주화운동|민주화를 위해 시위하는 것]]을 보고 싶지 않다. '''이것은 우리의 책임'''"이라고 역설하여 찬사를 받았다. [[http://www.newsis.com/ar_detail/view.html?ar_id=NISX20140927_0013196853&cID=10102&pID=10100|해가 뜬 뒤에도 시위가 계속되었다.]] 당초의 시위자는 100여 명 정도로 적었으나 시위대는 갈수록 늘어났다. * '''9월 28일''': '''실질적인 '혁명'의 시작.''' 홍콩 경찰은 '''최루탄을 발사'''하여[* 홍콩 경찰의 최루탄 사용은 2005년 한국 농민들의 반 WTO 원정 시위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다.] 진압을 시도하였다. 그러나 경찰의 강경 진압은 시위대에 대한 지지가 도리어 늘어나는 역효과를 낳았다. 우산이 시위의 상징으로 우뚝 선 날이었다. * 10월 1일: 중국의 국경절[* 마오쩌둥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한 날이다.]이었으나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4&oid=422&aid=0000082943|시위대는 시위를 계속하였다]]. 인구밀도가 높은 도심지에서의 시위이고 무려 10만여 명의 시민이 시위에 나섰으나 (외신들의 공통된 보도에 따르면) 철저하게 비폭력적이고 질서정연한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. '우산 혁명'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위대가 들고 있는 물품은 우산이나 마스크 정도가 전부이고,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4&oid=032&aid=0002528088|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이 숙제를 하는 모습이나 시위대 스스로 거리를 청소하는 모습 같은 게 보도되고 있다]]. 센트럴 바깥으로 시위가 확산된 것도 이날이었다. 시민단체들의 예상을 넘어선 규모로 시위가 커져 원래의 시위구역 바깥에서도 산발적인 시위가 일어난 것. 시위대 중 학생 지도부는 행정장관인 렁춘잉(梁振英, Leung Chun-Ying)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으며, 10월 2일까지 퇴진하지 않을 경우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4&oid=009&aid=0003317299|점거 구역을 정부 청사 등으로 확대하겠다는 발언을 하여 긴장은 계속되고 있다]]. * 10월 2일: 렁춘잉과 학생들의 면담이 있었으나 결렬되었다. 이후 시위가 장기화되면서 홍콩 당국이 시위대와 충돌을 일으키지 않아 우산 혁명의 열기가 좀처럼 퍼지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었다. * 11월 18일: 기세를 탄 홍콩 경찰은 몽콕에 설치한 바리케이트 철거에 나섰다. * 11월 26일: [[http://news.khan.co.kr/kh_news/khan_art_view.html?artid=201411262238175&code=970204|시위대의 핵심인물인 '''조슈아 웡이 다시 체포'''되었다.]] 레스터 셤 등 혁명의 주요 인물들도 상당수 체포되어, 우산 혁명은 중요한 국면을 맞게 되었다. * 11월 27일: 홍콩 카우룽싱(九龍城) 법원은 조슈아 웡과 렁콕훙(梁國雄) 사회민주연선(社會民主連線) 주석 등 당국이 체포한 시위대에게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4&oid=001&aid=0007271383|몽콕 지역의 출입 금지를 조건으로 보석을 허가한다]]고 밝혔다. 조슈아 웡은 [[http://news.kmib.co.kr/article/view.asp?arcid=0008898264&code=61131111&cp=nv|체포 과정에서 폭력행위가 있었다고 주장]]했으며, 홍콩 경찰은 이에 대한 화답으로 몽콕 지역에 배치한 경찰관을 2배 수준인 6000명으로 증원했다고 한다. 난리통에 정말로 [[http://www.newsis.com/ar_detail/view.html?ar_id=NISX20141127_0013322623&cID=10102&pID=10100|시위자 1명을 집단 폭행한 경찰관 7명이 체포되었다]]. * 11월 30일: 조슈아 웡의 체포는 [[http://www.newsis.com/ar_detail/view.html?ar_id=NISX20141129_0013326373&cID=10102&pID=10100|시위대의 재결집]]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했으며, 4천여 명까지 불어난 시위대가 [[http://news.sbs.co.kr/news/endPage.do?news_id=N1002711770|항의의 뜻으로 특별행정청 정문 봉쇄에 나섰다]]. 당국은 청사를 폐쇄했으며, [[http://www.etoday.co.kr/news/section/newsview.php?idxno=1029337|경찰이 시위대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후추 스프레이와 곤봉이 난무했고 부상자는 30명을 넘겼다]]. 시위대의 구호가 뜬금없이 "쇼핑 하러 가자"[* 쇼핑하다는 [[광동어]]로 買嘢(maai5 je5 마이 예 : 구어) 또는 購物(kau3 mat6 카우 맛 : 서면어, 아나운서들은 'gau3 mat6 까우 맛'이라고도 발음한다.)이라고 한다. 그런데 북경 당국은 당연히 [[보통화]]로 했기 때문에 보통화로는 購物(gou4 wu4 꺼우 우)라고 한다. 이걸 비꼬아서 홍콩 시위대는 보통화 발음을 흉내내서 鳩嗚(gau1 wu1 까우 우)라고 하여 조롱했다. 덧붙여서 鳩(gau1 까우)는 광동어 비속어이다. [[영 좋지 않은 곳]]과 관련있다.]로 바뀌어 큰 웃음을 주고 있는데, [[http://www.ajunews.com/view/20141201101844575|"시위 캠프 철거 후 더 많은 시민이 몽콕에 쇼핑을 하러 가야 한다"는 당국의 발언을 조롱한 것으로 보인다]]고. 시위대는 당국의 '만만디' 전략에 '혁명의 불씨'를 꺼뜨릴 뻔했다고 보고, 적극적인 반격을 통해 충돌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전술의 선회를 시도하고 있다. * 12월 1일: 중·고등학생이 시위에 가세하여 시위대의 규모가 불어나고 있다. 홍콩 법원은 [[http://www.yonhapnews.co.kr/bulletin/2014/12/01/0200000000AKR20141201049751074.HTML|시위대의 본거지가 있는 애드미럴티의 간선 도로에 대한 점거 금지 명령을 내렸다]]. 렁춘잉은 오후 기자회견에서 "지금부터 주저없이 법 집행을 하겠다. 경찰의 관용을 힘이 약한 것으로 오해하지 말라"는 선전포고를 보냈으며, 조슈아 웡 등 3명은 "지금 이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며 우리가 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그것을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를 것"이라는 말과 함께 '''[[단식투쟁]]을 시작했다'''. * 12월 2~3일: 센트럴 점령의 공동대표인 베니 타이·찬킨만·추이우밍이 2일 [[http://www.yonhapnews.co.kr/bulletin/2014/12/02/0200000000AKR20141202059151074.HTML|'''경찰에 자수'''하겠다고 선언]]했다. 센트럴 점령에선 "자수는 도심 점거 운동의 실패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, 학생 시위대의 철수를 설득하기 위해 법적 처벌을 감수하는 용기를 보여주는 것"이라고 주장하고 있다. 이들은 [[http://www.yonhapnews.co.kr/bulletin/2014/12/03/0200000000AKR20141203158900074.HTML|다음날 자수했으며]], 경찰은 이들을 조사한 후 별 일 없이 석방했다. 학민사조와 홍콩 학련 등 학생 세력은 [[http://news.kmib.co.kr/article/view.asp?arcid=0008915046&code=61131811&cp=nv|시위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]]. * 12월 4일: [[http://www.yonhapnews.co.kr/bulletin/2014/12/04/0200000000AKR20141204181400074.HTML|홍콩 학련이 도심 점거 시위 중단 여부를 1주일 안에 결정하겠다고 밝혔다.]] 센트럴 점령 측이 자수를 선택하면서 대학생들 역시 방식의 변화를 시도하려는 모양새다. 조슈아 웡은 단식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는데, 단식투쟁에 2명이 추가로 참여했으나 자신은 혈당 저하로 포도당을 주입받는 상황. * 12월 6일: [[http://www.yonhapnews.co.kr/bulletin/2014/12/06/0200000000AKR20141206048100009.HTML?input=1195m|조슈아 웡이 단식을 중단했다.]] 108시간동안 단식을 했으나 의사가 뜯어말려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고…다만 단식을 계속하는 사람도 있다. * 12월 10일: [[http://www.newsis.com/pict_detail/view.html?pict_id=NISI20141210_0010430744|시위대가 지역 주민에 사죄 및 감사함을 표명하는 행사를 단행했다.]] 시위대의 동력이 바닥났음을 암시하는 장면이다. * 12월 11일: 시위대 본거지인 애드미럴티 지역의 캠프의 철거작업 시작 * 12월 15일: 마지막 남은 공식적인 시위대 캠프 철거작업 종료. '''시위 해산.'''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